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위화도 회군과 고려 멸망 과정

by 역사 연구 2026. 10. 10.

위화도 회군은 왜 일어났으며 고려는 어떻게 멸망했을까요? 요동 정벌 논쟁과 이성계의 회군, 과전법 시행, 정몽주의 죽음과 조선 건국까지 살펴보며 고려 말 권력 변화와 새 왕조의 등장을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위화도 회군과 고려 멸망 과정
위화도 회군과 고려 멸망 과정

1. 위화도 회군은 왜 일어났을까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과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으로 사회 문제가 깊어졌고,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도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1388년 명나라가 철령 이북에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통보하자 고려 조정은 이를 영토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권력을 장악한 최영은 요동 정벌을 추진했고, 우왕은 이 계획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점과 여름철 출병의 위험, 장마와 군량 문제, 왜구의 침입 가능성 등을 들어 반대했습니다. 이성계가 제시한 주장은 훗날 사 불가론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조정은 정벌을 강행했고, 이성계는 조민수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요동으로 향했습니다.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에 이른 이성계는 군사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군대는 강을 건너 요동으로 진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정벌이 길어지면 국내 방어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이성계의 회군에는 이러한 군사적 판단뿐 아니라 최영 중심의 정치 운영에 대한 갈등도 작용했습니다. 1388년의 위화도 회군은 요동 정벌을 중단한 군사적 결정이면서 동시에 고려의 정치권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2. 회군 이후 고려의 권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성계가 군사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오자 정국은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이성계 세력은 요동 정벌을 주도한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했습니다. 이후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위에 올랐지만, 이성계와 신진사대부 세력은 왕실의 정통성을 문제 삼아 1389년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세웠습니다. 왕이 여러 차례 교체되는 동안 실질적인 권력은 점차 이성계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고려 왕조를 없애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정몽주처럼 고려 왕조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추진하려는 인물도 있었고, 정도전 등은 새로운 정치 질서를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갈등은 단순히 개혁 세력과 보수 세력의 대립만이 아니라, 고려를 개혁해 유지할 것인지 새로운 왕조를 세울 것인지를 둘러싼 차이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왕위 교체는 정치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과도 연결되었습니다. 새 왕을 세우는 것만으로 국가 운영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성계 세력은 토지 제도와 관료 체계를 정비해 새로운 정치 질서의 기반을 마련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회군은 권력의 중심을 바꾸었지만, 새 국가를 세우는 문제까지 곧바로 해결하지는 않았습니다.

3. 토지 개혁과 조선 건국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려면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과 토지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고려 말에는 토지가 일부 권력자에게 집중되고 국가의 조세 기반이 약해져 농민의 부담이 커졌습니다. 이에 이성계와 신진사대부 세력은 토지 제도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1391년 과전법이 시행되면서 관료에게 경기 지역의 토지를 수조권 형태로 지급하는 체계가 마련되었습니다. 과전법은 토지 분배와 조세 제도를 정비하고 새 정치 세력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토지 자체를 관료에게 모두 소유권으로 나누어 준 것은 아니며, 지급받은 토지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는 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과전법은 국가가 토지와 조세 체계를 다시 정비하고 관료에게 지급할 재원을 마련하려는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토지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왕조 교체를 둘러싼 대립은 계속되었습니다. 정몽주는 고려 왕조를 유지하려는 입장에서 이성계 세력과 맞섰지만, 1392년 선죽교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정몽주의 죽음으로 고려 왕조를 유지하며 개혁하려는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이성계 세력은 왕조 교체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습니다. 결국 1392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조선이 건국되었습니다. 이는 위화도 회군 이후 군사·정치권력이 재편되고, 토지 제도 개혁과 정치적 갈등이 이어진 끝에 이루어진 변화였습니다.

4. 마무리

위화도 회군은 요동 정벌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일어났지만, 그 결과는 군사 작전의 변경을 넘어 고려의 권력 구조를 바꾸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최영이 제거되고 우왕과 창왕이 차례로 폐위되면서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의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이어 과전법이 시행되어 토지 제도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고, 정몽주의 죽음은 고려 왕조를 유지하려는 정치 세력의 약화를 가져왔습니다. 마침내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 왕조는 막을 내렸습니다. 다만 고려의 멸망은 한 사건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랜 사회·경제적 문제와 외교적 갈등, 정치 세력의 분화, 토지 개혁과 왕조 교체가 서로 연결되며 새로운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조선의 건국은 단순히 왕이 바뀐 사건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원칙과 토지 제도를 새롭게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함께 나타난 변화였습니다. 이후 새 왕조는 중앙과 지방의 통치 체계를 정비하며 국가 운영의 기반을 마련해 나갔습니다. 고려 말의 정치적 혼란과 개혁 논의는 조선 초기 제도 정비에도 중요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다음에는 조선 건국 이후 태조 이성계가 새 왕조의 통치 기반을 마련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