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왜 거란의 침입을 받았으며 세 차례 전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993년 1차 침입과 서희의 외교, 1010년 2차 침입과 현종의 피란, 1018년 3차 침입과 귀주대첩까지 살펴보며 고려와 거란의 전쟁 흐름과 결과를 이해해 보겠습니다.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1. 고려와 거란은 왜 충돌했을까
고려가 건국된 뒤 북방에서는 거란이 빠르게 세력을 확대했습니다. 거란은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고 만주 지역의 강자로 성장했으며, 947년에는 국호를 요로 정하고 주변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고려 역시 고구려의 계승을 내세우며 북쪽으로 영토를 확대하려 했기 때문에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여기에 고려가 중국의 송과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거란과의 긴장도 높아졌습니다. 거란은 고려와 송이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했고, 고려는 거란의 세력 확대를 주의하면서 북방의 안정을 꾀했습니다. 결국 고려와 거란의 관계는 외교적 긴장을 넘어 세 차례의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중요한 점은 세 번의 침입이 각각 다른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1차 침입에서는 외교 협상이 중심이 되었고, 2차 침입에서는 거란의 군사 공격으로 고려가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3차 침입에서는 고려가 전쟁 준비를 갖추고 거란군을 크게 격파하면서 장기간의 충돌이 마무리되었습니다.
2. 1차 침입에서 서희는 어떻게 협상했을까
993년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군대를 이끌고 고려를 침입했습니다. 고려 조정에서는 거란의 요구에 따라 영토를 내주고 물러설 것인지, 전쟁을 계속할 것인지를 두고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서희가 직접 거란 진영으로 가서 소손녕과 협상했습니다.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 국가이며 거란과 고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여진 세력 때문에 양국의 교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고려가 여진을 몰아내고 거란과 통교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한다면 양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협상 이후 거란군은 철수했고 고려는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를 확보했습니다. 강동 6주는 이후 고려의 북방 방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고려는 이 지역에 성을 쌓고 행정 체계를 정비하면서 북쪽 국경에 대한 통치력을 강화했습니다. 따라서 1차 침입은 대규모 전투가 계속된 전쟁이라기보다 외교 협상을 통해 군대를 철수시키고 영토를 확보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고려와 거란의 갈등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려는 송과의 관계를 유지했고 거란은 이를 계속 경계했습니다.
3. 2차와 3차 침입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1010년 거란의 성종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고려를 다시 공격했습니다. 강조는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왕으로 세운 인물로, 거란군의 공격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거란군은 고려군을 물리치며 남하했고 현종은 개경을 떠나 나주까지 피란했습니다. 결국 거란군은 개경을 점령했지만 고려의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지는 못했고 철수했습니다. 이후 고려는 국방력을 강화하고 거란의 재침에 대비했습니다. 1018년에는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군이 다시 고려를 침입하면서 3차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려는 강감찬을 중심으로 방어 작전을 펼쳤고, 여러 전투에서 거란군의 진격을 막았습니다. 특히 귀주에서는 퇴각하는 거란군을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1019년 귀주대첩에서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은 거란군을 크게 격파했고, 거란군은 큰 손실을 입은 채 철수했습니다. 귀주대첩 이후 거란은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고려를 공격하기 어려워졌고, 고려와 거란은 외교 관계를 다시 정비했습니다. 이로써 세 차례에 걸친 전쟁은 사실상 마무리되었습니다. 1차 침입이 서희의 외교를 통해 강동 6주를 확보한 사건이었다면, 2차 침입은 고려가 수도를 내주는 큰 위기를 겪은 전쟁이었습니다. 3차 침입에서는 고려가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방어력을 강화하고 거란군을 크게 격파했습니다. 따라서 세 번의 전쟁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지만 고려가 외교와 군사력을 함께 활용하며 국가의 안전을 지켜 나간 과정으로 연결됩니다. 특히 2차 침입 이후 고려는 국경 방어를 강화하고 군사 체계를 정비했으며, 이러한 준비가 3차 침입에서 거란군을 막아내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고려와 거란은 더 이상 대규모 전쟁을 반복하지 않고 외교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고려는 송과의 관계도 조정하면서 주변 강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외교 공간을 확보해 나갔습니다. 결국 거란과의 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고려의 국방과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4. 거란 전쟁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고려와 거란의 전쟁은 993년부터 1019년까지 이어졌으며 세 차례의 침입을 통해 전개되었습니다. 1차 침입에서는 서희의 협상으로 거란군이 철수하고 강동 6주를 확보했습니다. 2차 침입에서는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이 피란하는 위기를 겪었지만 고려는 국가를 유지했습니다. 3차 침입에서는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을 크게 격파하면서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습니다. 이후 고려와 거란은 외교 관계를 정비했고 장기간의 대규모 충돌도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려는 북방 영토를 지키고 국방 체제를 강화했으며 주변 국가와 관계를 조정하는 외교 경험도 쌓았습니다. 특히 서희의 외교와 강감찬의 군사적 대응은 고려가 위기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방식을 보여줍니다. 거란과의 전쟁은 고려의 독립적인 국가 운영과 북방 방어 체제가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영향을 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